전쟁 이후, 한국에는 baby boom
나에게는 이모 두 분, 세 삼촌
미국에서 돌아왔을 때가 96
국민학교가 초등학교로 바뀐 해였고
한국말도 못했을 때부터 난 이미
학원에 다니고 있었어 피아노, 바이올린
속셈, 태권도, 합기도, 모두 아시죠
이 때는 HOT가 가요계를 싹 쓸고
갑자기 어른들이 용돈을 덜 주셨어
뉴스엔 우는 아저씨들 왜 그러냐 물었어
한 숨 섞여 나오는 대답은 "IMF"
아빠도 피해자.. 물론 견뎌내서 다행인데
모든 선생들은 대학에 무조건 가래
우리보다 더 열정적이었어, 이해 안 됐어
안 가겠다면 화내, '춤은 뭔 춤 장난해?
연고댄 나도 안 갔지만 넌 꼭 가야해'
중학교에 올라갈 땐 모든 게 다 변했어
같은 교복 같은 머리 작아지는 정체성
몇 개의 대학으로 모두가 목표를 정해
난 춤이 좋았지 공부할때면 맘이 불편해
나 같은 스타일의 아이들은 줄어들었고
모두가 연어떼 같이 같은 목적질 향해서
미친듯이 달려가 근데 웃고 있진 않아
나도 두려웠었지, 절대로 우리 아빠
처럼 되기 싫었어, 회사에서 시간 킬하는
집에선 잠만 자는.. 매일 일하는.. 개인 시간은?
어른이 되는 건 좋을게 없더라 하나도
그래서 그 땐 연예인이 부러웠었지 아마도
고등학교 땐 그저 더 빡셌을 뿐
죽어가는 꿈 그리고 늙어가는 두
분, 어릴 때 공부했던 애들은 전부 다
들어가려 했던 대학에 들어갔으려나
어쩌다 대학교에 들어가게 되었지 나도
나쁘지 않어, 큰 campus, 이쁜 여자, 또
다양한 분야에서 똘똘했던 사람들
'졸업 후 뭐해?'란 질문에 뭐라 하냐면
중학교 때 그 아이들과 같은 표정 짓고
'회사나 들어가야지, 장가/시집 갈 준비도'
행복하지 못 하대, '지겨운 경쟁이란 전쟁
은 언제 끝나냐 난 전생에 대체 어떤 죄
를 짓고 살았길래' 또 술에 취할때면 보통
이렇게 말하지, '더 좋은 대학 갈 수 있었어'
회사에 취직한 애들은 다 관두고 싶대
'내가 왜 모르는 어떤 사장/회장을 위해
일개미가 돼야 해' 근데 관두질 못 하지
왜냐 만들어진 체계에 우린 이미 속았으니
자유를 추구하는 동시에 버리지 못해 요람
오만, 불만족과 야속함은 내 세대의 공감